망명 혹은 이민 신청자가 국경을 넘기 위해 사회 서비스를 받으며 기다리는 동안, 코로나19의 격리 기간을 보낼 수 있는 쉼터 트리아지 호텔. 그리고 이곳을 꼼꼼하게 돌보고 있는 사회 복지사 로사. 로사 역시 미국에 가족들을 두고도 그 작은 국경 사무소를 넘어갈 수 없지만, 그래서 이곳에 오는 망명 혹은 이민 신청자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Rosa, wearing a brown vest with large pockets, stands in front of the triage hotel she helps manage in Ciudad Juárez, Mexico. In the background, children draw with chalk on the ground with their parents while other adults converse.
트리아지 호텔의 로사. "모두가 꿈을 가지고 이곳에 옵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불행히도 모든 사람이 행복한 이야기로 축복받은 것은 아닙니다."
Photo: 폴 라트제 / IRC

로사의 막내딸 에밀리는 겨우 7살이었을 때, 소아 골다공증과 관절염이 심각하게 진행되는 희소병에 걸려 몇 달간 입원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에밀리의 상태는 악화하기만 했고, 멕시코 푸에블라에서는 약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이가 나으려면 미국에서 치료받아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에밀리를 비롯한 로사의 다른 두 아이는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을 갖고 있었고, 아이들의 아버지도 미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녀들은 모두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에밀리는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로사는 푸에블라에 남아야 했습니다. 오늘도 아이는 희소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엄마 로사는 아이 옆에서 간호해 줄 수도, 음식을 해 먹일 수도 없는 상태로 근 10년간 아이들과 떨어져 멕시코에 살고 있습니다. 아픈 가족을 방문하기 위한 특별 비자를 신청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로사는 미국 국경과 가까운 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스(Ciudad Juarez)로 이사했습니다. 

시우다드 후아레스에서 그녀는 수천 명의 사람이 국경을 넘기 위해 힘겹게 애쓰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대부분 폭력과 박해를 피해 탈출한 망명 신청자들이었습니다. 그녀는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그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이것이 소명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현재 사회복지사인 로사는 트리아지 호텔(Triage Hotel)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트리아지 호텔은 망명 신청자와 이민자가 국경을 넘기 위해 사회 서비스를 받는 동안 코로나19 격리기간을 보낼 수 있는 쉼터입니다. 

 

너무, 너무, 너무 절망적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 가기 위해 비자를 신청할 때마다 실망하고, 좌절하고, 꿈이 산산이 조각나는 그 감정을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합니다. 저는, 신이 제게 이 일을 하라고 저를 이곳으로 부르셨다고 믿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겪었던 일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가끔 저는 “신이 제게 말씀하셨어요.” 하고 말하곤 해요. 그러면 사람들이 다시 묻죠. “뭐라고요? 카톡이라도 보내줬나요? 아니면 이메일? 신이 어떻게 당신에게 말한다는 거예요?”

Wearing a jean jacket, Rosa holds out her iPhone. There is a picture of her daughter on the screen.
로사는 딸의 사진을 보여줍니다. 세 아이의 엄마는 거의 10년 동안 아이들과 같은 나라에 살지 않았습니다.
Photo: 폴 라트제 / IRC

3년 전, 에밀리는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엉덩이 수술을 받아야 했어요. 딸과 함께 비자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죠. 정말 절망스러웠어요. “저를 차라리 족쇄에 묶어 데려가세요. 그렇게라도 하세요. 하지만 제가 딸 옆에 있게만 해주세요. 이 아이는 엄마가 필요합니다.”

테카테(Tecate), 티후아나(Tijuana), 바하 캘리포니아(Baja California), 로자리토(Rosarito)에서 시도해봤지만, 신은 모든 문을 닫으셨습니다. 미국에 갈 수 없어 대신 이곳 후아레스로 오게 된 거예요. 

4개월 후 저는 치와와주에서 세계 평화기구 대표이신 알폰소 무르귀아(Alfonso Murguia)목사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저는 그분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제 커뮤니티 안에서 일할 엄청난 기회를 얻게 된 거죠. 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저는 다른 분들이 겪었던 일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발병했고, 누구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 나는 아파트에서 "앞으로 몇 달 동안 여기서 혼자 뭘 해야 하나?”하고 묻고 있었죠. 

여러 인도주의 단체들과 회의를 하던 중, 트리아지 호텔에서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어요. 우리는 이 전염병이 도는 가운데,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국경에 있었죠. 저는 100퍼센트 완벽하게 봉사하겠다고, 그곳에서 살면서 호텔 모든 곳을 관리하며 내 몸, 내 영혼, 그 모든 것을 던져 헌신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정말 바닥부터 쌓아 올려야 했어요. 처음에는 관리 업무를 하는 사람이 나 혼자였기 때문에 새벽 3시까지 있었어요. 

 

 

A health care worker in full PPE pushes a cart down an outdoor walkway in front of doors to hotel rooms.
국제구조위원회와 국제이주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Migration)가 지원하는 분류 호텔 로사가 관리합니다. 이 호텔은 이민자들이 14일 동안 격리될 수 있도록 하며 정신 건강 및 법적 지원, 음식, 건강 검진 및 어린이를 위한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제공합니다.
Photo: 폴 라트제 / IRC

 

현재 트리아지 호텔은 이민자들이 14일간 격리하는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 저희는 아이들을 위한 정신 건강 및 법적 지원, 음식, 건강검진, 레크리에이션 활동 등을 제공합니다. 

저희 팀은 서로를 돌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이것이 동료애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이민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민자들이니까요.

제 아이들은 이곳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요. 에밀리는 후원하는 걸 좋아해요. 올해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는, 제 아들 이반이 2월의 눈밭 속에서 사람들에게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나눠주던 모습이에요. 충만한 사랑으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아이가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럽던지요. 

호텔의 각 방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딸처럼 생각하던 한 여성이 있었어요. 그녀는 1년 8개월 동안 카르텔에 납치되어 있었다고 해요. 그녀는 저희 스태프가 되었고, 그녀가 훌륭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죠. 그 아이는 여전히 제게 전화를 걸어 ‘엄마 잘 지내세요?’ 하고 안부를 묻는답니다. 

 

 

A father and young child bend over the ground drawing with chalk. They have already drawn a large sun.
호텔에서 부모와 자식이 분필로 그립니다. 로사와 그녀의 팀에게 어린이와 가족이 웰빙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은 매일 자신의 창의성을 표현할 수 있는 미술 세션을 포함하여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Photo: 폴 라트제 / IRC

 

언젠가 저는 신께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당신은 저를 어머니로 만들어 두시고는 아이들을 모두 빼앗아 가버리셨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나는 너희 아이들을 돌보고 있으니, 너는 나의 아이들을 돌보거라.”

이민자로서 저는, 우리가 원해서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위험한 일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이용만 당하기도 합니다. 사기를 당하거나 재정적, 신체적, 심리적 유형의 다양한 학대를 곳곳에서 경험합니다. 

누구나 꿈을 가지고 이곳으로 오지만, 불행히도 모든 사람이 행복한 이야기로 끝을 맺지 못합니다. 

나는 많은 사람이 결국 포기하고 떠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곳으로 오던 중에 다리나 손을 잃기도 했습니다. 몸뿐 아니라 영혼까지 큰 상처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예전에 한 커플을 알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만 돌아왔어요. 다른 한 사람은 오던 중 길을 잃었고, 사막에서 시신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그 누구도 일부러 이런 고통을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곳에 머무릅니다. 그들이 우리를 기억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터닝포인트가 되어준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탄성을 지릅니다. '

“침대!” 침대에 자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또 다른 사람들은 “저는 삼시 세끼를 챙겨 먹어 본 적이 없어요. 절 뚱뚱하게 만들 생각이에요?"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후아레스에서 아주 따뜻한 경험을 많이 마주했어요. 저는 이것이 우리 삶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모두가 사막이라고 생각하는 장소에 도착해서 아름다운 일출을 볼지도 몰라요.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곳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흔적을 남기는 것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