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1월 나치당 수장인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총리가 되었습니다. 두 달 만에 나치는 국가의 통제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결국 전 세계를 집어삼킬 12년간의 악몽이 시작되었습니다.

히틀러의 집권과 함께 독일의 노조와 야당의 활동은 금지되었습니다. 시민의 자유는 박탈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일 정부와 대학에서 유대인 숙청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나치 정권에 무관심했지만, 일부 사람들은 나치 집권 후 일어나고 있는 일과 앞으로의 위험을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1933년 7월, 51명의 저명한 미국의 지식인, 예술가, 성직자, 정치 지도자로 구성된 위원회는 대표였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요청에 따라, 국제구호협회(IRC, International Relief Association) 지부를 뉴욕에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이 중에는 철학자인 존 듀이, 작가인 존 패서스,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엘레노어 루스벨트를 비롯한 다른 유명한 인사들도 곧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노력에 동참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나치 정권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1933년 10월 17일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국제구호협회는 브라이언트 파크(Bryant Park) 맞은편 42번가 웨스트 11번지에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이 위치는 현재 국제구조위원회 뉴욕 본부 위치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1933년 7월 24일에 뉴욕 타임스에서 보도한 것과 같이 국제구호협회의 임무는 바로 "히틀러 정권의 정책으로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세계적 리더들은 1940년 파리가 나치 정권에게 점령당했을 때 긴급구조위원회를 창설했습니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위기가 심화하면서 이 두 단체가 하나로 통합되었습니다. 오늘날의 국제구조위원회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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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전 국제구조위원회 전무 이사였던 카렐 스텐베르크가 베를린의 식품 유통 센터를 방문합니다.
Photo: 국제구조위원회

유럽의 강제 실향민에게 구호를 제공한 최초 민간단체 

당시에는 난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난민 프로그램과 구호 기관이 없었습니다. 국제구조위원회는 독일 항복과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유럽의 실향민들에게 구호를 제공한 최초의 기관이었습니다.

국제구조위원회는 현재 40개 이상의 위기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유럽 및 미국 전역의 지역사회에서 난민과 망명 신청자들의 정착을 돕고 있습니다.

한국은 2022년 국제구조위원회의 아시아 지역 첫 번째 후원국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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